대한민국 위대한 이야기

공천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적용되는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인지도와 경쟁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판기념회는 주민 접촉면을 넓히고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위한 최적의 수단.. 본문

2022년 말하다/진실이야기

공천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적용되는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인지도와 경쟁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판기념회는 주민 접촉면을 넓히고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위한 최적의 수단..

동진대성 2019. 10. 3.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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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기념회부터 마라톤대회까지 다양한 지역구 관리법
전국 지역구의 국회의원 전체를 다시 뽑는 총선거를 앞두고 의원들은 저마다 자기 알리기, 지지자 확보하기, 정치 후원금 걷기에 열중한다. 사실 총선거보다 더 치열한 것은 당내 공천이다. 공천을 받느냐 못 받느냐에 따라 선거에서 당선되느냐 떨어지느냐가 바로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강남 3구나 분당, 인천 등 전통적으로 새누리당 강세인 지역은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충성도나 믿음이 강하기 때문에 공천권만 받으면 곧 당선이라는 공식이 있을 정도다. 민주통합당 텃밭인 전라도 지역에서는 당내에서 의원들이 공천권을 따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공천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적용되는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인지도와 경쟁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판기념회는 주민 접촉면을 넓히고 이름 석 자를 알리기 위한 최적의 수단인 것이다. 자신의 일생과 의정 경험의 소회를 담아 책을 발간한다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왠지 출판 시점에 뒷맛이 씁쓸해지는 이유가 뭘까?
국회의원의 지역구 관리법은 다양하다. 주로 이렇게 출판기념회나 지역 행사를 통해 부지런히 얼굴을 알린다. 선거철이 되면 유난히 지자체가 주최하는 마라톤대회나 음악회, 축제 등이 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회의원이 행사를 빛내주기 위해 귀한 시간을 쪼개 참석하는 것인지, 국회의원의 축사 코너를 마련하기 위해 지자체 예산을 털어 행사를 만든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국회의원 의정보고서에 숨은 진실
연말, 출근길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서 어깨띠를 두른 사람들이 나눠주는 홍보 책자 하나씩은 받아봤을 것이다. 또는 집으로 '국회의원 ○○○' 이름으로 우편물이 배달된 적 있을 것이다. 해가 바뀌면서 의원실은 지난 한 해 동안의 의정활동을 지역민에게 알리는 의정보고서를 내느라 분주하다. 법안 발의부터 민원 해결, 예산 확보 등 의원이 발로 뛰어 이뤄낸 성과를 정리한 의정보고서는 특히 2012년처럼 총선을 목전에 둔 경우 홍보 수단으로도 널리 활용된다. 그에 걸맞게 주 내용도 해당 의원이 그간 이룬 업적을 강조하여 정리한 것이 대부분으로, 그가 내걸었던 공약들이 어떻게, 얼마나 실현되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톡톡 튀는 제목으로 승부하는 의정보고서가 많은데 '마당쇠 이야기' '영등포의 밀린 숙제하기' '당신한테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알아?' 같은 식이다. 대부분의 지역구민들은 국회의원들의 의정보고서를 받아도 금방 쓰레기통에 구겨 넣는다. 때문에 의정보고서는 제목으로 눈길을 사로잡아 읽어보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희망과 꿈, 행복을 의정보고서의 주제어로 제시했던 과거와 사뭇 다른 풍경이다.


다양한 의정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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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의정보고서는 차명진 전 의원의 것이었다. 차 전 의원은 평소에 블로그를 통해 '차명진의 의정단상'이라는 이름으로 짤막한 글이나 그림을 올려왔는데, 의정보고서 역시 본인의 주특기를 십분 발휘해 만평집처럼 꾸몄다. 몇 페이지에 달하는 깨알 같은 글자 대신 촌철살인 그림 한 컷으로 소통하는 그의 기발함에 지루한 줄 모르고 읽은 기억이 난다.
이렇게 대부분의 의원들이 의정보고서를 1년에 한 번 발간하면서 온갖 아이디어로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꾸준한 의정보고서 발간을 통해 부지런함을 부각시키는 의원들도 있다. 민주통합당 황주홍 의원은 '한 초선 일지'라는 제목으로 거의 매일 이메일 보고서를 발송하고 있다. 주로 그날 이슈에 대한 나름의 분석과 단상을 일기 형식으로 담는데 때로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싣기도 한다.
의원들의 지역구 관리 수단 중 하나인 이 의정보고서에도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보고서의 내용을 떠나 발간 자체가 지역구 관리로 이용되는 경우가 그렇다. 국회의원이 발행하는 의정보고서는 단가가 약 300~400만 원에 이른다. 그런데 이는 약 1,500만 원 안팎으로 거래된다. 자신의 지역구 인쇄업체에 각종 보고서는 물론 회의 자료, 포스터 인쇄까지 몽땅 몰아주는 방법으로 일타이피를 노리는 것이다. 실제로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길 건너 인쇄소에서는 저렴한 단가에 빠르고 세련되게 보고서를 인쇄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구 의원실은 인쇄물 도안을 이메일로 보내고 다시 택배로 배송받는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역구 인쇄업체를 이용한다. 특별히 가격이 저렴하거나 기술력이 뛰어나지도 않다. 다만 지역구 표 관리와 상권 부흥이라는 윈윈 전략의 일환일 뿐이다.
민원 해결사 홍반장
또 한 가지 중요한 지역구 관리법은 민원 해결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재선, 3선, 4선까지 이루려면 지역구에서는 '홍반장'으로 통해야 한다. 민원은 지인을 통해 청탁처럼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우리 친척 동생이 이번에 어디로 발령이 났는데 한직이라더라. 의원님 힘 좀 써서 좋은 부서로 빼달라' '우리 시에 있는 모 공기업 지사가 다른 시로 이전을 준비 중이라더라. 뺏기면 우리 시에 손해가 막대하니 좀 막아달라'는 식이다.
민원 해결의 대가로 해당 의원은 민원 당사자를 포함한 그 가족 등 이해 당사자들의 표는 일단 확보한 셈이다. 은혜를 입었으면 갚는 게 도리라는 우리나라 정서상 어떻게든 내 일신 안위와 관련이 있다면 한 표 찍어주게 된다. 내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 사람이 곧 지역 일꾼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지역구에서 열 행사 뛰어다니느니 민원 해결 전화 한 통이 더 값지다는 자조 섞인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1인당 4급 상당 보좌관 2명, 5급 상당 비서관 2명, 6·7·9급 비서 3명을 둘 수 있다. 또 20개월 한도 내에서 인턴직원 2명도 둘 수 있도록 돼 있다. 즉, 의원 한 명당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실제로 이 인력이 모두 국회 의정활동에 활용되지는 않는다. 적게는 2명에서 5명 정도를 지역사무소에 두고 있다. 보좌진 중 제일 높은 직급인 보좌관을 지역에만 두고 아예 지역 민원 해결을 주 업무로 맡기기도 한다. 청년부장 등의 비공식적인 직함보다는 보좌진이라는 공식 직함이 지자체장이나 유권자들을 만났을 때 더 먹힌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지역활동 역시 의정활동의 일부로 봐야 하는 것일까? 보좌진들의 급여는 국가 예산으로 주는 것이니 원래의 취지인 입법활동 지원 외에 지역구 관리 용도라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닐까?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업무가 워낙에 다양하고 규제할 방법도 마땅치 않아 아직까지는 뾰족한 해답이 없다. 의정, 입법 활동과 지역구 관리 모두 국회의원의 업무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적어도 주연과 조연이 뒤바뀌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음성적 청탁이 공개 신문고로
이처럼 의원실로 찾아오는 음성적인 청탁성 민원이 문제가 되기 시작하자 의원들 사이에 스스로 지역구로 내려가 민원 해결사를 자처하며 공개 신문고를 여는 문화가 생겨났다.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당선 이후 매달 둘째, 넷째 토요일을 '민원의 날'로 정해 양천구 신월동 지역구 사무실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민원인을 만난다. 주로 형편이 어려운 주민의 보험금 수령을 돕거나 부채를 탕감해주는 일이다. 또 전북 익산시 지역구를 갖고 있는 민주통합당 이춘석 의원은 상·하반기 1년에 두 차례 '시민 공청회'를 연다. 공청회에 중앙 부처와 지자체 관계 공무원을 불러 일종의 '무력시위 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처음에 반신반의하면서 공청회장에 나왔던 주민들도 자신들의 의견이 속속 입법으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공청회 주제에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실제로 현재까지 공청회에 참여한 시민만 수천 명에 달하고, 민원 해결을 위해 확보한 예산도 5,000억 원이 넘는다.
물론 이를 두고서도 해마다 반복해온 총선용 겉치레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지역주민과 눈높이를 맞춰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은 이들을 권위적인 사회지도층도, 나라 세금 축내는 싸움꾼도 아닌 든든한 동네 일꾼으로 보이게 한다.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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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소영

강원도 동해에서 자랐고, 강릉원주대학교와 서강대학교에서 언론학을 전공했다. 한국정책방송을 거쳐 2007년 국회방송에 입사해 새누리당, 민주당 등을 출입하고 주요 상임위원회를 취재했다. 지은 책으로 『강원도의 힘』이 있다.

출처 나를 위한 최소한의 정치 상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