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위대한 이야기

정치권에는 '카·페·트 선거'라는 말이 있다. SNS 가운데 대중과의 접촉면이 넓은 카카오톡·페이스북·트위터를 활용한 저비용·고효율 선거를 말한다. 본문

2025년 말하다/진실이야기

정치권에는 '카·페·트 선거'라는 말이 있다. SNS 가운데 대중과의 접촉면이 넓은 카카오톡·페이스북·트위터를 활용한 저비용·고효율 선거를 말한다.

동진대성 2019. 10. 3.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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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SNS사용설명서

'강남스타일'의 가수 싸이가 유튜브 하나로 전 세계 수십억 명에게 동영상을 노출시키며 다시 한 번 그 위력을 실감한 SNS. 정치인들 역시 SNS의 확산력과 신속성, 접근성이라는 매력에 빠져 정당의 대표 SNS와 국회의원 개인별 SNS 계정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SNS의 등장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올리고 동의를 구할 수 있게 됐다. 시간을 쪼개 재래시장, 노인정을 돌며 상인들 손을 맞잡는 대신 손끝 하나로 수만 명의 유세 인파를 운집하게 만드는 힘. 정치인들에게 SNS는 달콤하고 편리한 수단이다.
21세기 취재 혁명
개인적인 인터뷰가 어려운 의원들은 트위터, 페이스북이 유일한 취재 수단이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대표적인데, 그는 선거 유세 기간에도 어깨띠나, 유세 차량, 확성기 없이 보좌관 단 한 명만 대동하고 나 홀로 유세를 벌였다. 이런 이재오 의원이 카메라 앞에서 기자들에 둘러싸여 쉽게 인터뷰에 응할 리가 없다. 이 때문에 기자들은 주요 정치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밤새 이재오 의원의 트위터 훑기에 여념이 없다. 한두 문장을 남기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한 문장의 정치적 파급력은 상당하다.
이렇게 되니 자연스레 정당 출입기자들도 바빠졌다. 유명 정치인들이 현안과 관련한 생각을 SNS에 실시간으로 올리게 되면서 이를 쫓아가기 바빠진 것이다. SNS는 기자들에게 배타적 취재 공간이었던 출입처 개념에 변화를 이끌어냈고, 출입처 정보에만 주로 의존하던 전통적인 취재 관행도 바뀌고 있다. 나만 해도 1년에 한 번 페이스북에 로그인할까 말까 하지만 선거철에는 의무적으로 주력 정치인들의 공간을 한 바퀴씩 돈다. 덕분에 예상치 못한 정보를 얻는 경우도 있지만 또 다른 취재거리를 떠안게 됐다는 번거로움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카·페·트 선거
정치권에는 '카·페·트 선거'라는 말이 있다. SNS 가운데 대중과의 접촉면이 넓은 카카오톡·페이스북·트위터를 활용한 저비용·고효율 선거를 말한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20대 인터넷 이용자 10명 중 9명이 SNS를 이용한다고 한다. 이들은 투표 인증샷을 올리거나 투표소 위치를 알려 동참 분위기를 조성하고 여론을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전통적으로 40대 이상 연령대의 투표율이 가장 높은 점을 감안할 때 20대의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SNS가 절대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20대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정치인들도 재빨리 SNS에 적응하고 있다. 특히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는 SNS를 활용한 선거운동이 허용된 첫 선거였다. 선거 기간에 후보들은 하루에 열 번도 넘게 SNS 페이지를 업데이트하면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린다. 실시간 유세 일정은 물론 언론보도, 홍보자료, 가족과 보낸 소소한 일상까지 올리는 것이다.
의외로 50대 이상 장년층의 SNS 참여도 활발하다. "카카오톡 하려고 스마트폰 산다"고 말할 정도이다. 장년층은 카카오톡 채팅방이나 카카오스토리에서 "투표했느냐"며 확인하고 인증샷을 찍어서 공유한다. 2030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카·페·트의 벽이 허물어진 셈이다. 특히 카카오톡은 5060세대의 투표 독려를 이끈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SNS 빛과 그림자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 SNS가 정치인에게 약이자 독으로 불리는 이유다. SNS에 글 한번 잘못 올렸다가 구설에 오르고, 정치적 입지가 크게 위축되기도 한다. 스스로 친 정치적 덫에 덜컥 갇히게 되는 셈이다.
SNS는 각종 유언비어와 흑색선전의 진원지로 지목받기도 한다. 단기간 여론의 흐름이 특히 중요한 대선에서 SNS와 스마트폰을 통한 루머 확산은 전파 속도가 입소문보다 훨씬 빨랐다. '김정남 망명설' '1조 원 비자금 세탁설' '숨겨놓은 아이 전격 공개' 등 소문들이 퍼져 나갔다. 물론 일부는 꼬리가 밟히기도 했다. SNS에 상대 후보 비방글을 올리고 이를 퍼 나른 새누리당 캠프의 십자군알바단(십알단) 실체가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적발되기도 했다.
문제는 친밀감을 가진 사람들끼리 연결되는 SNS의 특성상 진보는 진보끼리 보수는 보수끼리 모이게 된다는 것이다. SNS가 다양한 집단 간의 쌍방향 소통이라는 취지와는 무색하게 같은 편끼리의 네트워크에 더 강점을 보인다면 과연 진정한 소통의 장이 될 수 있을까.
반짝 유세의 장이 아니기를
SNS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임에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양날의 검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의 몫일 것이다. 간혹 SNS를 선거 유세의 도구로만 여기는 정치인들이 있다. 총선에 당선된 직후 지역 공약이나 정책들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어 한 의원의 개인 페이스북에 댓글로 질문을 남긴 적이 있다. 그런데 선거 유세 기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던 페이스북은 당선 이후 활동이 눈에 띄게 뜸해졌다. 이따금 근황을 공지하거나 지지자들의 글에 반응하는 것이 전부였다. 정책에 대한 질문, 비판적인 글에 대해서는 아예 답조차 달지 않았다. 소통의 장이라는 SNS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선거가 다가오면 또 한 번 정치권에는 SNS 붐이 살아날 것이다. SNS를 통한 소통이 선거 기간에만 존재하는 허울 좋은 말이라면 그들의 연극에 또다시 속아줄 국민이 과연 있을까.
영국의 경우에는 SNS를 단순 소통 공간이 아닌 참여 공간으로 넓혀서 이용하고 있었다. 트위터에 총선 공식 페이지 '2010 Election'을 개설해 총선 관련 정보를 제공했고, 세 번의 TV토론 기간 중 유권자들이 SNS를 이용해 후보자들에 대한 의견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후보자와 소수의 패널만이 참여하는 TV토론이 아니라, 모든 유권자들이 수시로 참여하고 검증할 수 있는 SNS 토론 공간을 만든 것이다. 또 영국 노동당은 트위터(@UKLabour)에 복지, 부동산, 노동 등 각종 정책에 대한 의원들의 견해를 게시하고 유권자들의 의견을 받고 있다. 보수당 역시 정당 블로그에 정책이나 사회 현안에 대한 의원 개인의 의견을 게시하고 있다. 지지자들은 이에 의견을 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공유할 수 있다. 정당의 정책과 당론이 소수의 지도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지 않고 SNS 공간 속에서 유권자들에게까지 개방돼 있다.
SNS 계정 1,000만 시대, 이제는 얼마나 자주가 아니라 어떻게 잘 쓰느냐가 더 중요해 보인다.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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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소영

강원도 동해에서 자랐고, 강릉원주대학교와 서강대학교에서 언론학을 전공했다. 한국정책방송을 거쳐 2007년 국회방송에 입사해 새누리당, 민주당 등을 출입하고 주요 상임위원회를 취재했다. 지은 책으로 『강원도의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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