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위대한 이야기
홍준표의 유년시절1 본문
"야들아 짐 싸라, 며칠 뒤 이사 간다."
홍준표는 국민학교 졸업 때까지 다섯 군데를 전전했다. 첫 입학한 학교는 경남 창녕의 남지 국민학교였다.
보통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사를 가서 졸업은 합천군 덕곡면의 학남 국민학교에서 했다.
같은 학교에서 6년 동안 붙박이로 공부를 하는 다른 아이들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홍준표는 옮겨 다니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홍준표 가족이 대구 신암동에서 창녕으로 이사를 가던 날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었다. 이날을 이사날로 정한 것은 국민학교가 23일날 겨울 방학을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자동차로 삼십 분도 안 걸리는 창녕까지 홍준표의 여섯 식구는 리어카에 이삿짐을 싣고 이틀 동안 걸어서 이사를 갔다.
내복도 없이 홑겹으로 입은 옷 속으로 한겨울의 찬바람이 무섭게 파고 들었다. 온 세상이 홍준표 가족을 버린 것 같았다. 아니면 홍준표 가족이 세상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리어카를 끌고 가는 아버지의 웅크린 어깨 위로 성긴 눈발이 날리고 있었고, 지나가는 마을의 초가 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가 그렇게 따뜻하고 부러울 수가 없었다.
신천동 산동네에서 단칸 월세방을 얻어 다섯 식구가 살게 되었을 때 홍준표 가족은 구호물자인 강냉이 죽에 의존하며 살았다.
여동생과 홍준표는 큰 고갯마루에 있는 동사무소로 가 줄을 서서 하루에 한 번씩 강냉이 죽을 타 오곤 했다.
홍준표 부모님은 선학 알루미늄 양은그릇 장사도 하고 팔공산공산면 주변에서 나무를 해와 팔기도 했다.
전 가족이 생활전선에 나서긴 했지만 요령이 없던 홍준표 가족은 여전히 빈곤의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출처] [홍준표 에세이]변방 01|작성자 윤태산
어릴 때부터 전학을 거의 매년 다니면서도 늘 일등을 했던 관계로 일찍부터 온 가족의 미래를 걸머지고 갈 대표 주자로 선정된 홍준표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의 영남중학교에 입학했다.
이 무렵 대구에는 작은 누나가 먼저 나가 방직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홍준표는 누나와 함께 자취를 했다.
가난하고 배가 고프기는 합천에 살 때나 대구에 나온 뒤나 마찬가지였다.
장학생으로 학비는 면제받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으나 배고픔은 면할 길이 없었다. 도시락을 쌀 수가 없어 점심 시간이면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
뒤에 내 밑의 여동생이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방직공장에 취직하여 대구에 합류했다. 이때부터 오랫동안 여동생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희생하여 내 공부 뒷바라지에 바쳤다. 그런데도 공부하는 나나 뒷바라지하는 여동생이나 모두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힘에 부쳤다.
영남 중학교를 거쳐 영남 고등학교에 진학한 홍준표는 아주 자연스럽게 장차의 진로를 육군사관학교로 정했다.
더 이상 나 하나 공부하기 위해 누나와 여동생들의 청춘을 희생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 졸업을 하면 안정적인 직장이 생긴다는 것이 거침없고 활달하다는 것도 홍준표가 군인의 길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기왕 될 바에는 멋진 군인이 되어 보겠다는 꿈도 꾸었다. 조국이 위기에 빠졌을때 한몸을 던져 명장의 반열에 오른, 그런 군인이 되어 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71년 10월경 나는 육사1차 시험에 합격한 후 신체 검사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사이에 아버지에게 사고가 발생했다. 아버지가 훔친 비료를 샀다는 장물 취득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비료를 보관, 관리하는 책임을 진 유지가 아버지에게 혐의를 덮어씌운 것이었다.
물론 아버지는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그 유지가 계속 아버지에게 혐의를 씌우는 바람에 아버지는 이틀 동안이나 파출소에 나가 이유 없이 조사를 받아야 했고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 유지가 추진하는 마을 일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합의해 주고 풀려나기는 했지만 그 후유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나는 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 가난한 것이 죄라면 죄일 수도 있지만 언제나 곧고 당당한 사람이다.
우리들에게는 거짓말도 못 하게 하는 내 아버지가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것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그 지방의 세력 있는 유지가 큰 목소리를 내고 파출소의 경찰이 처음부터 그 유지 편에 서서, 떠돌이처럼 굴러 들어온 사람인데다 가난하기가 이를 데 없는 내 아버지에게 범죄를 덮어씌우려고 작정을 하고 덤벼드는 데는 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아버지를 위하여 홍준표 나름대로 변호하고 투쟁하면서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육사를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그 대신 '법대에 가서 반드시 검사가 되어야 한다'는 각오가 섰다.
검사가 되면 사람들이 권력을 이용해 저지르는 범죄를 처단할 수가 있고 억울한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 줄 수 있다.
얼마나 많은 홍준표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짓밟히며 살고 있을까. 어쩌면 국민 전체가 보다 큰 권력형 범죄의 그늘에서 짓밟힌 채 속으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법대에 가게 된 동기, 그리고 검사가 된 이후 홍준표가 줄기차게 추구해 온 한 가닥 외길은 가난하고 무력했던 홍준표의 아버지가 당해야 했던 그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이미 결정이 돼버린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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